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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수필] 내가 사과나무에게 사과한 이유
 
양승진 기자 기사입력  2021/09/24 [21:00]
▲ 사과    © 양승진 기자

 

 뭘 잘못했을 때 건네는 게 사과(謝過)다. 추석 명절을 쇠면서 “사과할 일이 많아서 보냈다”는 우스갯소리를 그래서 하기도 한다.

 

물론 다른 뜻도 많다. 소승불교에서 이르는 깨달음의 4단계를 사과(四果)라고 하고, 조선시대 오위의 정6품 군직 또한 사과(司果)고, 공자 문하의 4가지 학과를 사과(四科)라고도 한다. 

 

하지만 오늘은 과일인 사과(Apples)에 대한 소고(小考)다. 

 

 몇 해 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샀다. 지구가 멸망할까봐 산 건 아니다. 이왕이면 과실이 달리는 것을 키워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부사나 홍로, 아오리, 양광 등이 아닌 미니사과 ‘루비에스’로 기억된다.

 

올해는 그동안 방치했던 나무를 꺼내 큰 화분에 옮겨 심고 야트막한 남쪽 담장 옆에 두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원 없이 햇볕을 받으라는 주문과 함께 물도 넉넉하게 공급해줬다. 

 

 봄이 되니 분홍색 사과꽃이 펴 온 집안이 화사해졌다. 꽃이 지고 잎이 한창 나올 때 쯤 시름시름 앓는 모습이 보였다. 뭔 일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진드기들이 달라붙어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물에다 퐁퐁을 섞어 뿌렸더니 좀 조용해졌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진드기들이 아니었다. 

 

 농약을 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상 최상의 약은 천연재료(은행 등)들이 들어간 약제뿐 이었다.틈만 나면 뿌려대고 ‘우리 집 1급 보호수’로 지정했다. 헌데 벌레는 어디서 그렇게 몰려오는지 마치 백만대군을 보는 듯했다.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쩔 수 없이 나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자력갱생’을 주문했다.

 

 벌레들은 참 신기하게도 본능적으로 이를 아는 듯했다. 가끔 뒷산에 가 보면 그 많은 나무 중에 유독 과실나무에만 진드기들이 진을 치고 산다. 봄이면 이놈들 때문에 복숭아나 매실, 모과 등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다. 고사(枯死)하지는 않지만 온 몸이 근질거리는 모습이어서 애처롭기 그지없다. 

 

 조금씩 날이 더워지면 진드기들도 마찬가지다. 햇볕이 강렬해 잎사귀 뒤에 숨어도 이젠 이놈들이 아우성이다. 이때부터 작은 과실이 달린다. 수 없이 많이 달리는데 비가 한 번 오면 빗방울에 맞아 저절로 퇴출되니 자연적으로 솎아지는 셈이다. 

 

 한 여름이 되면 과실은 제법 통통해진다. 나뭇가지가 휠 정도로 몸무게를 늘린다. 잘못하면 가지가 부러질까봐 줄로 묶어줘야 할 판이다. 물론 진드기들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괴롭히지만 자연의 일이라 치부하고 짐짓 모른 체 한다. 

 

8월 하순쯤 되니 미니사과가 서른 개 넘게 달렸다. 색깔도 조금씩 붉어지면서 사과 같은 모습이 됐다. 헌데 백로가 지나고 비가 오면서 바람이 불자 이놈들 떨어지는 소리가 방안까지 들렸다. 

 

 어떻게 손 쓸 방도도 없이 바람이 잦아지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산을 씌어 줄 수도 없고 애만 탔다. 비가 그치고 나가보니 열 댓 개가 마당에 뒹굴었다. 그래도 그만하면 다행이다 싶어 이젠 안 떨어지겠지 하며 안심했더니 자고 나면 하나 둘 떨어지는 게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즉석본드로 다시 붙여주고 싶지만 이것도 자연의 일이니 참견할 일이 아닌 듯했다. 

 

 아직도 사과가 좀 남아있으니 추석에는 빨간 사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헌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17일 아침에 모조리 떨어지고 말았다. 잎은 노랗게 변해가고 주름살 패인 것처럼 가지는 윤기를 잃었다. 

 

 나무 한 그루 때문에 밥맛이 떨어져 망연자실 쳐다보고 있자니 사과 1개가 나뭇잎 사이로 보였다. 기쁜 마음이었지만 참 애처로웠다. 1년 사과농사를 지어 딱 1개 남았으니 그놈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사과는 주인이 나 몰라라 했으니 섭섭함의 표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과가 내게 사과할 게 아니라 내가 사과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사람이 살다 보먼 나도 모르게 짓는 죄가 많아 사과할 일도 참 많다. 애초부터 사과라고 이름을 짓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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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9/24 [21:00]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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