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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러시아 연해주 답사기 3] 연추의 번성과 조선왕조의 몰락
연해주 한인들의 얼을 찾아
 
김성윤 기자 기사입력  2018/11/29 [16:38]
▲ 김성윤 기자, 단국대 명예교수   

1896년 2월 11일 고종이 일본군 감시를 따돌리고 경복궁을 탈출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갔다. 역사는 이것을 아관파천이라 부른다.

 

 고종은 그곳에서 만 1년 하고도 9일을 보내고 1897년 2월 20일 덕수궁(경운궁)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허울뿐인 '자주독립을 위한 황제국'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고종이 선언한 대한제국은 8년 만에 일제 보호국이 되고, 13년 만에 식민지로 전락했다. 1910년 8월 22일 오전 5시 어전회의를 연다.

 

그리고 나라를 일본에게 넘겨주는 한일합방 문서에 조인한다. 그 후 일주일만인 8월 29일 이를 백성에게 공포하였다. “ 조선 황제 폐하는 조선 전부 또는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하고도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이 조약의 제 1조이다.

 

이로써 조선왕조는 27대 5백 19년 만에 일본에게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 시기 우리가 어제(2018년 11월 12일) 블라디보스톡에서 맹고개관 (바라바쉬:Barbash)까지 왔던 길을 굶주림과 학대에 못 견디어 고국을 떠나야 했던 최재형 선생을 비롯한 우리의 선조 한인들이 닦았다. 오늘날 같은 중장비도 없었다. 변변한 장비나 몸을 보호할 옷가지도 없고 발을 보호할 변변한 신발도 없었다.

 

▲ 맨발에 남루한 옷차림으로 연해주에 진출한 한인 이주자들의 모습    © 김성윤  기자

     

장비라고 해야 삽과 곡괭이가 전부였다. 이 치욕스런 역사를 가슴 아프게 직시하면서 우리는 그 길을 따라 남쪽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조했던 10년이 넘는 낡은 25인승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살기 위하여 이 땅으로 와야 했던 이주민들의 뒤를 이어 망국의 설움을 가슴에 앉고 우리의 독립 운동가들도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 그 역사의 현장에 우리가 왔다.  우리는 조선왕조의 망국의 원인을 되짚으며 우리 한인선조들의 아픔과 고뇌를 기억해 내고 다시는 이런 역사의 반복을 용인하지 말자는 다짐도 하였다.

 

어제 도착하여 만찬 후 간단한 소감을 돌아가며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중 내내 잊을 수 없는 말을 한인 4세 엘레나로부터 들었다. 러시아에서 한국 문화를 전공하고 대한항공에 근무했던 아가씨다. 매우 총명한데다 부지런하고 자기중심이 바로선 자그마하며 다부진 아가씨였다.

 

그녀가 한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러시아인으로부터 한인들이 더 이상 상처를 안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농사지을 땅은 이곳 말고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국경지대로 와서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국경지대는 여러 제약 요인과 국가의 규제가 많고 위험도 따른 지역이다. 예민한 지역으로 러시아인도 살기를 꺼리는데 외국인이 살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우리 한인 선조들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구었던 이 땅은 거룩한 땅이다. 우리 선조 한인들이 살았던 이 땅은 위대한 땅이요, 우리 선조 한인들이 살았던 이 땅은 축복받은 땅이다.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곳으로 오고 싶은 것이다.

 

누가 뭐래도 한인의 이주 역사를 직시하고 독립 운동가들의 활동 무대를 보존하여 우리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후손에게 전하고 싶어서 나는 이곳을 뜻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하여 왔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보면 땅이나 사서 한탕 하려는 투기꾼이 먼저 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두만강 개발이 연추 근처의 추카노프에 있는 땅을 임대하여 놓고 방치하여 황무지가 된 끝없는 농지인데 재 임대 및 권리 양도를 전제로 매물로 나온 농지 (1)    © 김성윤 기자

 

그 이유는 농지를 확보한 사람들에게서 여실히 읽을 수 있다. 수백만 평의 농지를 임대하여 놓고 수년 동안 농사를 짓지 않았다. 그리고 재임대하겠단다.

 

그 땅이 어떤 땅인가? 가난과 탐관오리의 학대를 벗어나고자 조선 최북단 6진과 경흥으로부터 학대받고 헐벗은 우리 한인 선조들이 넘어와 짚신을 신고 삽과 곡괭이로 황무지를 옥토로 바꾼 땅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보금자리는 스탈린이라는 소련의 독재자에게 무참히 유린당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고야 이 땅에 다시 와보니 황폐해지고 황무지로 변한 땅이다.

 

무쇠도 내버려두면 녹이 슬고 만다. 옥도 닦지 않으면  광채를 발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도 가꾸고 수양하지 않으면 녹이 슬고 만다. 정신이 녹이 슬면 생활이 타락하고 끝내는 이씨 왕조처럼 몰락하고 만다. 땅도 버려두면 황무지가 되고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들판으로 변한다.

 

▲ 두만강 개발이 추카노프에 있는 땅을 임대하여 놓고 방치하여 황무지가 된 끝없는 농지인데 재 임대 및 권리 양도를 전제로 매물로 나온 농지 (2)     © 김성윤 기자

 

이곳의 황폐하고 황량한 들녘을 우리 한인 선조들이 일구었던 그 모습으로 복원해야 된다는 것이 나의 소박한 꿈이자 소망이다.

 

이래서 이곳에서 농사를 지을 사람의 도덕은 필부(匹夫)의 도덕과는 달라야 된다는 것이다. 위험도 무릅쓰고 공분(公憤)도 가슴에 새길 줄 알고, 민족과 나라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이곳을 개척하고 발전의 주춧돌을 놓아야한다. 이런 생각에 잠을 설치며 오리온 호텔에서의 첫 밤을 새게 되었다.

 

나는 이 호텔에서 숙박은 처음이지만 지난번 여기서 만찬을 한 경험은 있다. 가격에 비하여 음식이 별로여서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숙박을 하고보니 호텔은 매우 낡아 있었으며 종업원들도 서비스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샤워실의 꼭지가 터져 물이 옆으로 새고 욕조의 밑바닥이 갈라졌는데 고무판을 위에 살짝 덮어놓은 정도의 수준이었다.

 

자다가 잠이 깨어 이른 새벽에 경기데일리 박익희 대표와 밖을 나오니 마당에 살어름이 얼었으나 공기는 매우 상쾌하였다. 더욱이 공해가 없는 탓에 공기가 맑고 하늘에 은하수가 금방이라도 하얀 가루 비를 마당에 뿌려 줄듯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란 시를 떠올려 보았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서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아침 6시가 되어 일출을 보려고 하였는데 너무 깜깜하여 다시 방으로 돌아와야했다. 조찬을 7시부터 8시 사이에 끝내고 9시에 장고봉 전투 또는 하산호 전투 기념비가 있는 전망대로 떠났다.

 

 하산호 전투(러시아어: Хасанские бои, 영어: Battle of Lake Khasan) 또는 장고봉 사건은 1938년 7월 29일부터 8월 11일까지 일본 제국의 식민지인 조선, 만주국, 소련의 국경인 두만강의 하산에서 벌어진 국경분쟁으로 일어난 전투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카츄샤 노래의 배경이 되었던 전투의 기념탑이다. 카츄샤 노래는 대조국전쟁을 통해 크게 유행했다. 러시아 내에서만 300가지의 버전이 수집되었다고 한다. 그 뒤 한국의 아리랑과 같은 러시아의 국민가요가 되었다. 현재도 전승기념일과 같은 때 많이 불리고 있다.

 

그 전투가 일어난 지 올해가 8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나는 다른 것은 하나도 부럽지 않은 데 넓은 토지와 국가 수호의 의지를 이런 상징물로 표현해내는 러시아가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의 자부심, 러시아의 국력 그리고 러시아의 권위를 매번 이런 상징물에서 볼 수 있었다.

 

▲  하산의 영웅들에게 란 글이 탑의 상층부에 새겨져 있다. 러시아 도시의 역에는 이런 상징물이 어김없이 세워져 있다. 이런 상징물을 통하여 러시아의 자부심과 긍지를 바탕으로 다민족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  사방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전망대이다.  © 김성윤 기자

 

전망대 아래 남쪽으로 보이는 희미한 철도는 북한과 라진을 이어주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이고 그 옆에 발해의 염주성이 있다. 우리가 온종일 돌아다녀야 될 크라스키노 지역은 발해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에 속했던 염주(鹽州)였었다.

 

유니베라 장민석 법인장의 설명에 따르면 1주일에 2회 정도 북한과 러시아로 열차가 오간다고 하였다. 이곳으로부터 북동쪽에 지신허 마을에 이어 2번째로 만들어졌다는 상(上) 연추마을이 있다. 그 연추마을을 중심으로 최재형 선생과 안중근 의사가 머물고 활동했던 곳이다.

 

그리고 조선 왕조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국권회복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한인들이 들어와 이주 초기 한인사회의 연해주 중심지로 발전한 곳이다. 이곳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기까지 우리 한인 선조들은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과 땀을 흘렸겠는가? 

 

▲ 전망대에서 바라본 멀리 염주성이 희미하게 바다와 맞닿아 있고 그 앞으로 북한의 나진과 블라디보스톡크를 이어주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하나의 선으로 보인다.    © 김성윤 기자

 

 

▲ 전망대에서 멀리 산자락 아래 우리 한인 선조들이 역경을 딛고 조성했던 상(上 )연추 마을을 아련하게 볼 수 있다.     © 김성윤  기자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고귀한 3대 액체가 피와 눈물과 땀이라고 한다. 피는 용기의 상징이다. 그리고 눈물은 정성의 상징이며 땀은 노력의 상징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한 가장 고귀한 이 3대 액체를 얼마나 흘렸는가에 따라서 인간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고,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

 

우리 한인 선조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개척되었던 연추의 마을을 이 전망대에서 한눈으로 조망하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가슴을 펴고 멀리 높은 곳을 바라보라!

높은 뜻을 펴라! 꾸준히 힘을 길러라!

그리고 목표에 도전하라! 정상을 향해서 달려라!

우리는 너희보다 못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고 온갖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였다. 그런데  뭘 그리 망설이고 뭘 그리 헤아리나? 란 역사의 소리, 한인 선조 이주민들의 역경극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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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9 [16:38]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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