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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러시아 연해주 답사기 6] 하산군의 현실과 허울뿐인 시장경제
연해주 한인들의 얼을 찾아
 
김성윤 기자 기사입력  2018/12/13 [11:35]

나는 연추의 마을과 개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낙엽 지고 메마른 황량(荒涼)한 산천을 둘러보았다. 주위를 돌아보니 이른 겨울 탓인지 농사짓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도 없다. 평화로움이 오히려 슬픈 사연으로 되돌아왔다. 낡은 집들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녹아 있을 뿐 이미 인적이 끊긴 상태였다. 골목길에는 집 나온 개들만이 유난히 자유스러워 보였다.

 

▲ 크라스키노의 골목길에서는 어디서나 집나온 개들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속에서도 4마리를 볼 수 있다.    © 김성윤 기자

 

낙엽 지고 벌거벗은 상태로 서 있는 나무는 황량하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 황량한 나무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새봄과 함께 성장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고목은 이미 성장 가능성을 멈춘 나무이다. 그러나 나목은 지금은 죽어있는 듯 보이나 봄이 되면 잎이 돋아나고 꽃을 피울  가능성이 있고 희망이 있는 나무이다.

 

그래서 추워 보이는 연추의 가로수며 개천가의 버드나무며 산속의 굴참나무가 오히려 내게 위안을 주었다. 한때 연해주의 한인(韓人) 문명의 요람이었던 연추도 언젠가는 이 나무들처럼 과거의 영화를 다시 찾겠지? 란 생각을 하며 다시 미지의 세상 속으로 나아갔다.

 

▲  낙엽 진 거리는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더욱 쓸쓸 하였다. 그러나 나뭇잎이 피어나듯이 언젠가 이 거리도 활력이 넘칠 것이다.   © 김성윤 기자

 

우리가 이곳을 둘러본 것은 불과 이틀에 지나지 않았지만 100년 전 한인 선조들의 흔적과 삶을 머리와 가슴으로 엿볼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언제까지나 가슴에 새겨놓고 싶은 연추 그리고 크라스키노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은 포근한 고향 집에 온 느낌이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고 가슴에 담았는데... 아쉬움과 슬픈 사연이 있다면 우리 한인선조들이 일군 거리와 동네인데 그 이름마저 사람들의 기억을 떠나버렸다. 그 아쉬움을 윤동주 시인의 “길”이란 시로 달래본다.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우리나라도 부산을 향하여(Turn Toward Busan)란 국제 추모행사가 있다. 이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만든 행사가 아니라 캐나다의 6.25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89)씨가 2007년에 제안해서 만들어진 행사이다.

 

즉 21개 참전국에서 매년 2300명의 전몰장병이 안장되어있는 부산 유엔 기념공원 쪽을 향해 1분간 묵념하는 것이다. 모르는 국민도 많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전쟁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상징으로 통한다.

 

러시아처럼 크고 작은 전투현장에 기념탑을 세우고 도시와 항구마다 가장 붐비고 좋은 장소에 기념비를 마련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런 메모리얼 기념물을 보면서 러시아의 힘은 이 같이 나라를 위해 희생된 영혼을 기리고 감사함을 간직하는데서 나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명용사에서 영웅을 가릴 것 없이 어떤 도시를 가나 전승 기념비가 있다. 이것이 러시아의 힘이요, 다민족을 하나로 통합하는 원동력이요, 러시아의 자부심이요 긍지요, 국가에 대한 범접할 수 없는 상징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같은 정책은 우리나라도 꼭 벤치마킹해야 될 것 같다.

 

▲ 유비콤(Yubikom)회사가 만든 유제품을 파는 가게 건너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장병들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잘 조각되어 있고  입구 양 옆에 꽃이 놓여 있었다.    © 김성윤 기자

 

유비콤(Yubikom) 회사가 운영하는 가게 근처에는 폐허가 된 구(舊) 유치원 건물도 매물로 나와 있다. 이곳의 폐허가 된 유치원이나 학교를 보면 마치 100년 전 번성했던 한인 선조들의 마을과 땅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울적하였다. 비록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긴 하였으나 크라스키노에 있는 구(舊) 세관 건물도 매물로 내놓아서 볼 수 있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피곤도 하고 지쳐서 유비콤(Yubikom) 회사가 운영하는 숙소에 가서 러시아에 관한 이야기를 장민석 현지 유비콤 법인장께 듣기로 하였다. 나는 이곳이 호텔인 줄 알았는데 호텔은 아니고 농장에서 운영하는 연수원과 같은 곳이었다. 앞에는 호수가 아련히 보이는 언덕에 아주 고급스럽게 지어진 숙소였다.

 

▲   폐허가 된 유치원 건물을 매물로 내 놓았다. 그러나 이 건물을 사서 무엇에 쓸 것인가? 시장 개념이 부족한 러시아 사람들의 사고를 볼 수 있는 사례이었다.  © 김성윤 기자

 

머리가 복잡하거나 나처럼 글 쓰는 사람은 이곳에서 며칠만 쉬어가도 머리 회전을 막는 장애물을 허공으로 날려 버릴 것만 같았다. 아주 조용하고 쾌적할 뿐만 아니라 현대적 문명의 이기가 고루 잘 갖춰져 있었다.

 

컴퓨터, 인터넷과 와이파이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세상과 소통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나 같은 빈티 나는 훈장의 경우 체류비가 걱정이 될 뿐이었다. 숙박의 경우 2인 1실이 200불이며 조찬 25불 오찬 30불이라고 하였다. 블라디보스톡 고급호텔과 비슷한 가격이었다.

 

▲  한적한 숲속과 호수가 어우러진 유비콤(Yubikom) 회사가 운영하는 연수원 겸 외래객 숙소   © 김성윤 기자

 

이곳에서 대화 중 자연스럽게 화제에 오른 것은 외국인에 대한 대우와 체류 문제였다.

 

유비콤(Yubikom) 장민석 법인장의 말에 의하면 러시아에서 2번 이상의 범죄를 범한 경우 외국인은 추방된다고 하였다. 그 범죄 속에는 교통법규 같은 경미한 경범죄도 해당된다고 하였다. 물론 법을 지켜야 질서가 유지되고 법의 권위와 신뢰를 세울 수 있다.

 

▲  유비콤(Yubikom) 장민석 법인장이 (손을 들고 있는 분) 러시아의 투자현황과 유의 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 김성윤 기자

 

그러나 많은 액수의 돈을 투자한 외국인에 대한 이 같은 독소 조항은 자칫 자기 재산을 러시아에 헌납할 수도 있다. 심지어 거리에서 큰소리만 쳐도 범죄자로 몰릴 수 있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하나 우리처럼 거리의 선교 자유는 꿈도 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제약 요소도 많다.

 

청렴결백한 삶을 사셨던 베다니 선교사님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재입국이 안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에 이르자 러시아의 법이 너무도 가혹하고 끔찍스러웠다. 러시아의 법은 강자의 의사를 강요하는데 머물 뿐 약자를 보호하는 것과는 너무도 먼 거리에 있는 것 같다.

 

비자발급도 까다롭다고 하였다. 지역별 몇 명에게 비자발급을 할 것인지 부터 미리 정하여 놓고 발급을 한다니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 안 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곳으로 진출하려면 보다 세밀하고 치밀하게 외국인이 추방되는 범죄의 유형과 종류에서 각종 투자의 경우 필수적으로 알아야 될 사항의 점검 목록부터 만들어야 귀중한 돈의 낭비를 막을 것 같다.

 

역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자 내일을 안내하는 등대이다. 조·러 수호통상조약으로 우리가 당했던 치욕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 같다.

 

1884년 조선 정부와 러시아제국 사이에 조·러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당시 조·러 수호통상조약의 8조 4항을 살펴보면 조선 측 원문과 러시아 측 원문 내용이 각기 해석을 달리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조선 측의 한문(漢文) 문서에 따르면 “러시아 군함이 조선 연해에서 수로 형세에 대해 현지 조사하면 조선 정부도 힘껏 도와야 한다.”고만 되어 있다. 이에 반하여 러시아 측 본문에는 “조선 정부는 조선의 강 바다 호수 등에서 측량(測量)과 측도(測度) 작업에 종사하는 러시아 군함에 가능한 모든 협력을 제공한다.”고 되어있다. 즉 조선 정부는 조선의 바다에 인접한 연해에만 한정하여 러시아의 조사를 허락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측 문서는 조선의 강과 바다 등 물과 인접한 모든 지역에 관한 측량을 규정하고 있다. 사실 조․러 수호통상조약은 한문과 러시아어로 작성되었지만 제 12조 1항에 “각 조항의 의미를 달리 해석할 경우에는 러시아어 조문을 기초로 한다”고 규정하여 놓았다. 이를 기초로 우리의 바다와 강에 관하여 러시아가 전면적인 조사를 요구하였고 힘이 없는 조선 왕조는 이를 허용하여야만 하였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국가 간의 조약이나 협정은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여야 하고 다툼이 없게 하여야 한다. 그것이 서로를 위하여 좋은 일이며 관계발전을 지속시킬 수 있는 밑바탕이다. 더구나 우리보다 힘이 센 나라는 언제나 자기 나라의 의견이 정의라고 우긴다.

 

지금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에서도 이 같은 상황을 여실하게 볼 수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의견이 정의고 맞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자기 나라 의견이 정의고 맞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누구의 말이 더 먹히는가? 옳고 그름을 떠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 말이 더 먹히고 있다.

 

왜 그럴까? 미국이 중국보다 힘이 더 세기 때문이다. 국제정치학 입문서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국제정치학은커녕 법학개론, 경제학개론 한번 제대로 안 읽은 분들이 이 험한 국제간의 의향서나 협정에 나서는 것을 보았다. 너무도 무모하다고 할까 아님 만용이라고 할까? 협약이나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고 협상에 나서는지 참으로 모를 일을 보았다. 더 이상 쓰기도 부끄럽고 할 말도 없다. 그래서 이 같은 형태의 우리네의 러시아내 투자는 00주고 뺨 맞는 격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If you know about your enemy and yourself, you can win as many as 100 times out of 100 battles.)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 반면에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승과 패를 각각 주고받을 것이며 적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조차도 모르면 싸움에서 반드시 위태롭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손자병법 모공> 편에 모공(模攻)’이란 모계(謀計)로써 적을 굴복시킨다는 의미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다.

 

그리고 지금도 모든 사업의 기초정보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외에서 사업을 하려면 한번 쯤 새겨보아야 할 명언이다.

 

아무튼 같은 동포라는 명목으로 유비콤(Yubikom) 장민석 법인장으로부터 좋은 차와 담소의 시간을 가진 것에 대한 추억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크라스키노 면사무소 옆에서 한식을 하는 김 스베틀라나(Kim svetlana) 집에서 오찬을 하기로 하였다.

 

▲ 김 스베틀라나(Kim svetlana) 집    ©김성윤 기자

 

이미 하산군청 대외협력부장이 김 스베틀라나와 공동으로 한국카페를 하면 어떻겠는가에 대한 제안을 수차 하였다.

 

그러나 누구와 같이 사업을 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므로 계속 뒤로 미루었다. 그 이유는 사고가 어느 정도 같아야 하는데 전혀 다르기 때문에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투자보장과 이익환수에 관한 법도 따져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법적 보장 없이 투자만 재촉하여 웃어넘겼다. 한식당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도 정말 우연한 일로 대화의 탁자에 올랐다. 한국 사람이 생선을 좋아한다고 하였더니 김 스베틀라나 두 아들이 어부라서 11월부터는 직접 바다에서 생선을 많이 잡는다. 그것으로 요리도 하고 식당을 운영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문제를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하여 김 스베틀라나에게 "두 아들이 어부냐?"고 이번 방문 중에 내가 직접 김 스베틀라나에게 물어보았다. 김 스베틀라나는 "어부가 아니라 방갈로 사업을 한다."고 하였다. 지난 6월에 하산에 왔을 때 자연산 장어가 많이 잡힌다고 하였다. 그 소리에 우리 일행은 장어 요리집만 내어도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래서 그 장어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더니 가물치를 장어로 소개하여 주었다. 알고 그런 것인지 정말 모르고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으나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웃어넘겼다.

 

김 스베틀라나가 민박을 한다고 전해 들어서 "방이 있느냐? 있으면 보여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파트가 빈 곳이 있는데 현재는 아들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식사 후 "그곳을 직접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가능하다"고 하였다. 식당으로부터 걸어서 10분쯤 거리에 5층짜리 낡은 아파트 지역이 있었다. 그 아파트의 외관은 몹시 낡아 있었다.

 

그러나 그곳까지 갔으므로 내부를 보고 싶었으나 안에서 잠겨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물론 오래된 현관 열쇠를 가지고 있었으나 안에서 잠가놓았기에 몇 번을 열기를 시도하였으나 열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아파트 안으로는 들어가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위 환경이며 아파트 상태로 볼 때 이곳에서 민박하기는 어려워 보여 서둘러 아파트를 나왔다. 남이 안 본다고 슬쩍 속이면 그다음 인간 관계는 파멸이 따를 뿐이다. 대명천지(大明天地)밝은 데서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것이 있다면 신뢰의 상실이다.

 

다시 오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김 스베틀라나의 집안은 누추하기는 하였으나 넓은 대지에 비교적 큰 집이었다. 마치 우리네 시골집처럼 단장이 제대로 안 되어 어수선하고 누추하였다. 그 때문에 집안에서 식사를 하는 것보다 밖에서 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더구나 밖에다 식사준비를 이미 하고 있어서 밖에서 먹기로 하였다. 약간 날씨는 쌀쌀 하였으나 초겨울의 따뜻한 햇볕과 함께하는 달래와 깻잎, 그리고 김치와 된장찌개는 세상에 그 어떤 요리보다도 맛이 있었다.

 

▲ 한국식  상차림  모습  © 김성윤 기자

 

▲  김 스베틀라나의 상차림    © 김성윤 기자

 

이래서 인간은 간사한가 보다. 우리가 보았던 선교사님 집과 오찬 식사는 영국의 소설가 디킨스가 쓴 “두 도시의 이야기” 만큼이나 달랐다. 선교사님의 집과 고생의 장면은 모두 잃은 채 포만감이 넘치도록 밥을 먹었다. 부끄러움도 모른 채 말이다. 우리는 식탐이 많은 사람을 보고 돼지처럼 먹는다고 하는데 그 돼지는 자기 위의 80% 정도만 먹으면 멈춘단다.

 

그런데 인간은 배가 불러도 아~ 배불러 하면서 자기 위의 용량에 100% 이상을 먹는다. 그것도 모자라 소화제까지 먹는다. 그것이 식탐이고 죄악인지 알면서도 ... 아무튼 맛있는 오찬과 함께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 유비콤(Yubikom) 회사가 현지에서 생산 가공을 거쳐 판매하는 유제품의 일부    © 김성윤 기자

 

식사 후 바로 옆에 있는 유비콤(Yubikom) 회사가 운영하는 유제품 가게로 갔다.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치즈 등의 유제품을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하여 그 안에서 팔고 있었다. 유비콤 회사에서 만들어 파는 아이스크림 하나당 150루불(한화 약 2600원)에 구입하였다. 쌀쌀한 날씨인데도 너무도 맛이 있어서 마치 소풍 나온 어린애들처럼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떠들며 즐겼다.

 

▲ 유비콤(Yubikom)회사 제품의 유제품은 매우 싱싱하였다. 그중에서도 아이스크림 맛은 일품이었다.    © 김성윤 기자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유비콤(Yubikom)회사 장민석 법인장이 바로 옆 공터와 뒤쪽에 낡은 건물 쪽으로 안내하였다. 옛날 6학년(우리의 대학 1학년에 해당)까지 다닐 수 있었던 학교건물인데 사서 숙소로 리모델링하여 2층 이상은 호텔로 개조를 하고 1층에는 6차 산업 판매소로 쓰고 싶단다.

 

▲   옛 학교 건물을 유비콤(Yubikom)회사가 매입하여 1층은 유제품을 비롯한 일상용품 가게로 쓰고 2층은 개보수를 하여 숙박시설로 이용할 예정이란다.  © 김성윤 기자

 

6차 산업이란 농촌에 존재하는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바탕으로 농업과 식품, 특산품 제조가공(2차 산업) 및 유통 판매, 문화, 체험, 관광, 서비스(3차 산업)등을 연계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6차 산업인가? 그 이유는 6차 산업이 내포하고 있는 부가가치 창출 과정 때문이다. 원료가 되는 생물이나 자원이 다양한 처리 과정을 거치게 되면 높은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알밤 40kg 그대로 판매 할 경우 2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 이를 2차 상품인 알밤 전분으로 만들어 판매할 경우 4배인 8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으며 이를 다시 밤 묵으로 만들 경우 48모를 만들 수 있고 이를 수요자가 직접 먹을 수 있도록 현장에서 판매할 경우 16만8000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알밤으로 판매하는 것보다 무려 8.3배의 수익을 낼 수 있다.

 

▲ 6차 산업 예시도    © 김성윤 기자

 

그 때문에 위 그림에서 보듯이 6차 산업이 농가수익을 올리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 중에서도 오지인 크라스키노에서 6차 산업의 현장을 볼 수 있어서 매우 반가웠다. 더욱이 러시아 농민이 아니라 한국인 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회사이기에 이 같은 발상이 가능한 일이다.

 

우리 한인 선조가 살던 연추의 황폐화된 마을을 보고 우울했던 기분도 여기서 만큼은 원위치로 되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외국에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것을 나 자신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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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13 [11:35]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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