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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술샘과 주천강 & 법흥사 적멸보궁과 연화샘
<자연과 물 & 사람들>술샘이 있는 주천강의 섶다리와 무릉도원 법흥사 적멸보궁과 연화샘
 
박익희 기자 기사입력  2019/03/10 [20:34]

 봄기운이 남녘으로부터 성큼성큼 다가온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미·북 정상회담도 결렬되었다.  북한의 비핵화는 멀어졌고 평화무드도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할 듯하다.

 

3.1절 100주년 행사장인 광화문에 가보니 남남의 갈등이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3.1운동은 일제의 압제에서 민족자결과 자유와 인권을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독립운동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느닷없는 빨갱이 발언으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진실을 호도했다. 지도자의 언행은 신중해야 한다.

 

▲ 강원도 영월 주천강과 섶다리 모습     © 박익희 기자

 

엄청난 태극기 인파가 서울역과 주요 거리를 가득 메웠다. 훨씬 규모가 크고 뜨거운 애국의 물결은 공중파에서 외면한 것이다. 이런 나라의 현실이 스모그와 미세먼지가 잔뜩 낀 하늘처럼 답답했다. 그때 문득 술샘이 생각났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 대자연으로 가자. 강원도 영월로 가자. 술샘이 있는 주천강 깨끗한 여울을 보고 빙허루에 올라 세상을 굽어 보자.

 

술샘이 만든 주천강과 쌍섶다리

 

▲ 술샘(酒泉주천) 모습, 낙옆을 주워내고  사진을 찍었다.     © 박익희 기자

 

수필가이며 서예가인 김광남 선생님이 몇해 전에 약수물을 취재한다고 하니 영월의 술샘(酒泉)을 가보라고 추천하셨다. 가뭄이 심했던 그해 주천강은 수심도 얕고 술샘은 큰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찾으니 술샘은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고을의 지명은 유래와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고을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고을을 빛낸다. 강릉과 원주의 첫 글자를 딴 강원도는 들판은 적지만 산림과 물이 좋아 현대인들에게 각광을 받는다. 한반도는 등뼈와 같은 태백산맥을 품고있다. 이 산맥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이 다른 풍속과 기후를 갖고 있는 고장이 강원도이다. 그리고 태백산맥을 넘으면 동해가 있어 마음이 답답할 땐 푸른 바다가 우리를 손짓한다.

 

주천강 술샘에 도착하니 솔가지로 만든 쌍섶다리도 볼 수 있었다. 어떤 부부가 섶다리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었다. 다리 위를 사람이나 달구지가 지나야 다리는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망산(望山)에 세워진 빙허루(憑虛樓)에 오르니 주천면 다하누촌과 주천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문헌에 나오는 청허루는 어디쯤 일까?

 

이래서 김광남 선생님이 이곳을 추천하셨구나. 건너 산에 문필봉이라해도 좋을 뽀족한 모습의 산이 보였다. 어쩌면 이곳은 술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닐까?

 

술샘은 빈촌에 술은 마실 수 없고 술샘에서 술이라 생각하고 마신 물이 술샘이 생긴 연원이 아닐까?  다하누촌에서 한우나 꺼먹돼지 고기로 만든 안주와 술에 취하고 우정에 취하고 자연에 취하며 인생의 여울목을 무사히 건너는 게 아닐까?

 

▲ 망산에 세워진 빙허루와 주천면 소재지 다하누촌 모습과 공덕비 등등    © 박익희 기자

 

빙허루에서 내려오는 길에 은행나무 열매가 많이 떨어졌는데 주워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곳의 은행 열매는 오염되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안녕히 넘는다는 영월(寧䞲)지명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단종임금만 생각났다.

 

역사는 불쌍하게 삼촌에 의해 폐위된 임금에게 동정심을 유발한다. 망산 아래에는 4명의 국회의원과 옛 선인들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영월땅에서 배출한 대표적인 유명인사들이다.

 

다음은  법흥사로 자동차를 몰았다. 산골이지만 도로포장도 잘되었고, 농한기라 사람도 거의 안 보였다. 푸르른 산을 보며 산림녹화가 정말 잘되었구나. 무릉도원면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신선이 산다는 곳이 무릉도원이 아닌가? 영월 땅에는 김삿갓면이 있는데 무릉도원면이 있는 줄은 몰랐다.

 

산간오지에 박물관이 제일 많은 곳이 영월이다. 영월군에는 3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몇 해 전 친구들과 청령포와 단종왕릉을 답사했을 때 어느 식당 주인이 "단종임금이 영월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증언에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비록 단종임금은 삼촌인 세조임금에 의해 첩첩산중 영월 땅, 육지 속의 섬 청령포에 유배되어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이곳에서 죽었다. 그 억울한 한을 역사는 전하고 이를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그 영혼을 달래고 위로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단종문화제는 영월의 대표적인 문화제로 해마다 4월에 열리고 있다. 삼재(三災)가 없다는 십승지에 속하는 영월은 동강과 방랑시인 김삿갓의 유허지와 무덤이 있는 곳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다. 

 

태실의 고장이라는 경북 성주가 고향인 필자는 세종대왕자 태실은 초등학교 다닐 때 단골로 소풍 가는 명승지였고, 그곳을 지키는 선석사라는 절은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계족산 왕검성을 오르며 정조대왕의 태실을 발견하고 놀라워 했었다.                                     

 

▲ 법흥사 입구의 사자 아가리에서 나오는 수조 모양     © 박익희 기자

 

법흥사 적멸보궁과 연화샘

예전에 한번 방문하여 물만 마시고 왔던 5대 적멸보궁 인 법흥사 수조가 자꾸만 생각이나 찾아 갔다.  때마침 수암스님이 불교 신도들에게 “신라 자장율사가 사자산 연화봉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묻어두고 토굴에서 기도를 했다”고 설명을 하고 있었다.

 

자장율사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때 당나라에 가서 부처님의 진신사리 5과를 가져와 이곳에 법흥사를 세웠다고 역사는 전한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정선의 정암사, 오대산 월정사)중 하나가 영월의 법흥사이다.

 

▲ 법흥사 원음전과  자장율사의 토굴과 적멸보궁   © 박익희 기자

  

궁(宮)과 전(殿)은 임금님과 부처님이 거처하는 지존의 건물을 말한다. 대웅전, 대적광전 등은 큰 영웅을 모신 곳이란 뜻이며 적멸(寂滅)이란 탐진치를 벗어난 고요한 깨달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즉 적멸보궁은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보배로운 분이 머무는 집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각설하고 사자산 속에 법흥사는 제법 규모가 큰 사찰이다. 이곳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이며 신라구산선문의 하나라고 한다. 마치 연꽃잎이 감싸듯 피어있는 사자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찰에는 사자 아가리에서 나오는 시원한 물줄기가 큰 수조에 떨어지며 철철 넘쳐나 다시 작은 수조로 떨어지고  있었다.

 

▲ 징효국사 탑비 모습, 용머리를 한 거북이가 여의주를 물고 금세 달려들 듯하며 비머리에는 4마리 용모양이 새겨진  빼어난 조각품이다.     © 박익희 기자

 

수조 옆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두 그루가 멋들어지게 지켜보고 있다. 수조 뒤에는 징효국사의 탑비가 세워져있는 데 귀부는 비신를 바치고 있는 용머리를 한 거북이가 여의주를 물고 웅크린 자세로 금세 달려들 듯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마 비석이 너무 무거운 것일까? 아니면 누가 해코지를 하려는지 살펴보나?

 

징효국사의 혼백이 승탑으로 남아있으니 스님의 업적을 기억하라는 뜻일 게다. 징효국사는 여말려초의 철감선사 도윤의 제자라고 하는 데 도윤스님은  전남 화순 쌍봉사에 국보문화제 철감선사 부도탑의 유명하다. 돌로 만든 조각품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수작으로 기억된다.

 

금색으로 쓴 적멸보궁이란 안내석을 따라서 오르니 쭉쭉 뻗어오른 멋진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금강송 군락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적송 군락이 매력과 운치가 있다. 

 

이런 솔숲에 오면 저절로 깊은 숨을 들어마시며 경건해진다. 말이 필요 없고 고마움과 청정함을 느끼게 되고  폐부에 쌓인 찌꺼기를 토해내듯 심호흡을 한다. 조금 오르니 솔숲 아래 물맛 좋은 샘이 있다. 

 

▲ 사자산 연화봉 아래 적멸보궁과 연화샘     © 박익희 기자

 

목을 축이며 이곳에 오길 참 잘했구나 싶었다. 정확한 샘 이름이 없다. 연화봉 아래에 있으니 필자는 연화샘이라 부른다. 연꽃 모양의 돌로 만든 뚜껑이 있고 녹색 아크릴을 덮어두어 먼지가 안 들어가게 만들었다. 아크릴 뚜껑을 살짝 들어내고 사진을 찍었다.

 

연화샘에서 오른쪽으로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을 오르면 적멸보궁이 나온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묻힌 곳이라 이곳 건물에는 부처는 없다.

 

자장율사는 진신사리 5과를 가져와 그 중 하나를 연화봉 세 봉우리 중 한 곳에 묻고 그 아래 토굴을 짓고 기도를 하며 성불할 것을 발원했다.  

 

 적멸보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고요가 찾아왔고, 탐진치의 고집멸도도 소멸되는 깨달음으로 반야정관 해탈로 빠져들었다. 참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나는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인가? 다만 스스로의 족적과 향기를  남기고 홀연히 바람처럼 사라지는가?

 

귀가 길에 황둔에서 쌀로 만든 찐빵을 맛보며 서둘러 귀가를 서둘렀다. 오늘 하루를 무사무탈하게 지켜준 천지신명과 부처님과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내 눈의 들보를 빼고, 남의 눈의 티를 보지 말라" 성당 신부님의 강론이었다. 아내가 저녁미사에 와준 것이 대견한 듯 신뢰를 보냈다.

 

▲ 징효국사의 승탑과 200년 이상된 밤나무     © 박익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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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10 [20:34]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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