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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교수의 요동과 간도 답사기 4] 통한의 청수단교와 북녘 땅을 조망하다.
 
김성윤 기자 기사입력  2019/07/04 [18:02]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고구려의 박작성을 나와 다시 압록강의 비경과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1시간쯤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태평만댐이 나온다.

 

▲ 압록강 유역 지명과 댐이름   ©김성윤 기자


태평만댐은 8ㆍ15 이전 일본인들이 기공했다가 물러간 후 중국에 의해 1987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압록강 하구에 있는 중국 랴오닝성 단동(丹東)에서 강을 50㎞ 거슬러 올라간 지점에 있는 태평만(太平灣)댐은 중국 측 지류인 포석하(蒲石河)와 합류하는 지점 위의 물굽이에 들어서 있다.
 
댐의 종사원은 무려 3천명이나 되며 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하나의 소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북한 평안북도 삭주군과 압록강 사이에 대략 1㎞ 남짓의 제방이 들어서 있다. 댐의 압록강 하류의 물길을 막은 이곳에는 한강의 팔당호(36㎢)보다 조금 작은 25㎢ 크기의 인공호수가 형성되어 있다.
 
그 댐 안에 일제 때 비행장으로 조성했다는 섬도 있다. 그 섬을 비롯한 태평만댐의 중국 측 하안(河岸)은 국가 4A급 관광지로 지정돼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이곳을 찾은 날도 중국과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 북적거렸다. 
   

▲  주말이면 풍광이 수려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고 한다.   © 김성윤 기자


태평만댐의 주요 기능은 복합적이다. 우선 북·중 양국의 압록강변 최대 도시인 단둥과 신의주의 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 다음으로는 댐의 낙차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에 건설된 수력발전소는 중국 측에 각각 19만㎾급과 15만㎾급 두 곳이 있다.
 
그 두 곳에서 발전한 설비용량만 해도 총 34만㎾에 달한다. 단순히 설비용량만 놓고 보면 국내 최대 수력발전소인 충주댐(41만㎾)과 비슷한 규모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은 북한과 중국으로 배분되고 있다. 이 전력은 북·중 간 최대 접경도시인 단둥과 신의주의 생활에 필요한 전력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밤거리를 환하게 밝히는 용도로도 활용되고 있다.
 
압록강 위에는 태평만 댐과 비슷한 대규모 댐이 네 곳이나 있다.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가장 하류의 태평만댐을 시작으로 수풍댐, 위원댐, 운봉댐 등이 들어서 있다. 이들 댐 모두는 북한과 중국이 공동으로 운영과 관리를 하고 있다. 특이 이들 댐에서 생산한 전력은 북한과 중국이 절반씩 나누어 갖는다. 북한으로 들어간 전기는 북한의 산업군수시설을 가동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래도 여유가 생긴 전기는 중국으로 되판다고 한다. 북한의 핵을 제거하기 위하여 미·중 정상회담에서 논의 되었던 중·조우의수유관이 북한의 목줄이라면, 압록강 위의 댐 역시 북한의 핵(核)과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전력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생명줄과도 같다.
 
태평댐 안에 장전 하구촌(長甸 河口村)이 있다. 이곳에서 유람선을 타면 1939년 북한과 연결토록 건설했다는 청성단교 밑을 지나 북한 쪽으로 접근하여 국경근처의 북한 사람들의 생활상이며 국경의 관리 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압록강 단교처럼 끊어진 다리 밑으로 지나가는데 이 다리가 청수 단교이다. 평안북도 청수군과 연결되었던 이 철교는 667m 로 일제 때 건설된 교량이다. 현재 교량은 6ㆍ25 당시 폭격으로 세교각의 상판이 날아간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 미군의 폭격으로 상판이 날아간 청소대교 일명 압록강 단교와 유사한 스토리를 품고 있다.    © 김성윤 기자


6.25한국전쟁 때 신의주 철교보다 이곳을 통하여 중공군이 더 많이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 끊어진 철교를 보기 위하여 한국에서 온 관광객과 중국인 관광객이 북적이고 있었다. 특히 관광객들에게 북한의 오지를 보여 주는 것이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보다도 진영논리에 의한 적대감을 심어주고 돈을 벌기위한 마케팅에 활용되고 있어서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참으로 잔인한 것이 인간이란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한쪽은 한에 맺혀 보러오고 한쪽은 그걸 즐기겠다고 오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돈은 한국관광객을 상대로 벌면서 중국어로만 주변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래도 참아야 되는 것이 이 땅을 잃어버린 우리 선조들의 원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 쪽 장전 하구촌은 한편으로는 영농시범 촌으로 발전시키고 다른 한쪽으로는 관광지역으로 개발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입구부터 한글과 한문으로 혼용된 간판이 즐비하다. 마치 조선족 자치구 같은 느낌이다. 여기만 본다면 이곳이 중국인지 한국의 또 다른 관광지 인지 모를 정도다. 유람선을 타고 유월의 고운 태양을 받으며 위에도 푸른 하늘 아래도 푸른 태평댐 물위를 관광객을 태운 선박이 최대한 북한 땅으로 접근 하였다.
 
접근할수록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다. 그 아름답던 청산(靑山)을 볼 수가 없다.
   

▲  북한쪽의 산은 붉은 황토가 보일 정도로 산이 할퀴고 패인 곳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 김성윤 기자


산은 푸르고 울창해야 한다. 산은 높고 골짜기가 깊다고 귀한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야 산으로서 가치가 있다. 북한 쪽의 산은 나무가 없는 붉은 산이 많다.
 
그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한다. 그 중 하나는 식량이 부족하여 산에 텃밭을 만들다보니 자연스레 나무를 베어내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한 가지는 탈북자들이 탈북하기 전에 은신할 수 있는 장소로 쓸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벌채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로 산에 나무가 없어 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곳이 추운 지방이므로 난방을 위하여 가까운 곳의 나무부터 베어다 땔감으로 사용해서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되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유야 어떻든 나무가 없는 산은 산으로서 가치가 없다. 푸른 숲으로 뒤덮인 산이야 말로 당당하고 아름답다.
 
1960년대만 하여도 한국의 산도 헐벗고 황폐하였다. 그런 산들이 지금은 울창한 숲으로 바뀌었다. 산림녹화와 자연보호 운동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만들었다. 풍부하고 저렴한 전력공급으로 더 이상 나무를 남방으로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한국의 산을 푸르고 늠름한 산이 되게 만들었다.
 
녹색은 생명의 빛깔이다. 살아 있는 것은 푸르고 푸른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북한의 붉은 산은 죽음의 산이요, 생기를 잃은 산이다. 여기에 희망을 불어넣으려면 녹색의 산으로 바꾸어야 한다.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라서 위대하지는 않다. 전쟁을 잘한다고 훌륭한 나라는 더더욱 아니다. 자본이 축적 되었다고 뛰어난 나라가 아니다. 역사가 길다고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산을 푸르게 가꾸고 인재가 많아야 훌륭한 나라다. 양심의 청진기를 들고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인재가 득실거려야 부자 나라가 될 수 있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가장 가까이 다가가 조망해 본 북한은 국토가 황폐하고 사람들이 숨어있다. 거리를 활보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다니는 사람이 없다. 적적하고 고요하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동물인데 아무리 다가가 보아도 북한 땅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을 보고 즐기며 관광 상품화하여 돈벌이를 하는 중국인에게만 횡재를 안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가끔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지나가는가 하면 낡은 트럭도 지나갔다. 태평댐에서 본 북한 쪽은 평북 삭주군 청수읍 이라고 한다. 끊어진 교량 건너편의 희고 낡은 건물이 청수 여자교화소라고 한다.
   

▲ 과연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인가? 싶을 정도로 오지인데다 앞은 태평호가 가로막아 신체구금의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 김성윤 기자


주로 밀수꾼 등을 수용한다고 하는데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폐가 같아 보였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산다고 생각하니 나의 생활이 얼마나 안락하고 행복한지 모른다. 그 뒤편 옆의 조그만 길로 가끔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지나가는가 하면 낡은 트럭이 지나가는 것이 시야에 들어 왔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동시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1898년 3월 협성회(協成會) 시절에 지은 「고목가(枯木歌): ‘Song of an Old Tree’」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노래는 아래와 같다.
 
     (1) 슬프다 저 나무 다 늙었네.
         병들고 썩어서 반만 섰네.
         심악한 비바람 이리저리 급히 쳐
         몇백년 큰 나무 오늘 위태
      (2) 원수의 땃작새  밑을 쪼네.
          미욱한 저 새야 쪼지 마라
          쪼고 또 쪼다가 고목이 부러지면
          네 처자 네 몸은 어디 의지 하려고
      (3) 버티세, 버티세 저 고목을
          뿌리만 굳 박여 반 근 되면
          새 가지 새 잎이 다시 영화 봄 되면
          강근이 자란 후 풍우 불외(風雨不畏) 
      (4) 쏘아라 저 포수 땃작새를
          원수의 저 미물 나무를 쪼아
          비바람을 도와 위망을 재촉하여
          넘어지게 하니 어찌할꼬.
 
이 노래에서 이승만은 대한제국을 늙고 병든 나무에 비유했다. 친러 수구파 관료들을 딱다구리에, 제정 러시아의 위협을 비바람에, 독립협회나 협성회의 개화파 인사들을 포수에 비유하였다고 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지었다는 「고목가」의 소재는 중국 고전시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집필한 것으로 여겨지는 『제국신문』의 논설 말미에 “고인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쪼고 쪼는 때짱새야, 다 썩은 고목을 쪼고 쪼지 마라. 일조에 풍우가 이르러 그 나무가 쓰러지면 너희가 어디서 깃들려고 하느뇨 하였으니, 짐승을 빗대어 한 말로 족히 사람을 가르치더라.”라고 말하였다. 북한 독재자들은 삶에 지치고 먹을 것이 없어 산야를 헤매는 북한 주민들을 더 이상 쪼지 말기를 마음으로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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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04 [18:02]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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