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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운스님의 '오늘의 법문(法門) [132]
인생이야기(人生論)
 
제운스님 객원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0/01/23 [08:48]

 

▲     © 제운스님 객원칼럼니스트

 
인생이야기(人生論) 

인생여몽춘 人生如夢春
영구욕망인 永久慾望湮
일념회관성 一念廻觀性
초연시사륜 超然始死輪
 
인생은 봄날의 꿈 같은데
영구한 욕망에 빠져드니
한 생각 돌이켜 자성을 관하면
윤회하는 생사에 초연하리라.
 
급격한 사회변혁에는 염세관(厭世觀 허무주의)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난다. 우리사회가 진치적 이데올로기 변혁의 시대상에 접어들었다. 1848년 파리에서 시작된 혁명의 열기가 전 유럽에 퍼지면서 의회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많은 군중들의 희생을 강요받게 되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근세 유럽의 혼란기 축소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와 여당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입법 행정 사법부까지 손을 대고 있고, 이런 변화를 주도하는 현 정부와 여당에 반하여 야당과 지식인들이 개혁의 이름으로 장기집권을 노리는 플랜으로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고 판단해 항거하고 있다.

 

유럽은 이미 100~200년 전에 겪은 일인데 대한민국은 지금 그것을 좇아가고 있는 꼴이다.
독일공화국이 1948년 들어섰지만 많은 사람들은 허무주의에 허덕였다. 이때 사랑은 없다. 오직 성욕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쇼펜하우어도 바로 이 시대 사람이요, 철학자다.
 
이렇게 변화하는 사회, 흥망성쇠 또한 불교적으로 보면 인과의 법칙 아님이 없으니 배가 고파 눈물에 젖은 빵 한 조각을 씹으며 사는 인생도 나의 삶이요, 그대의 삶이리라.

 

용수보살 중론에서는 이 세상 모든 존재의 양상은 인연으로 일어나 인연으로 멸하지 않는 것은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 없다.”했다.


오늘의 현실은 물질풍요 속에 구조의 다각화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만약 행복으로 여긴다면 스스로 세상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어야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물질풍요가 정신의 타락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다 알다시피 돈으로 자기 입속으로 밥도 넣고, 가만히 앉아서 세상을 다 보고 알 수 있음이 바로 정신타락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한 사회는 한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모든 것들이 첨예화 되어있어 첨단시대를 살고 있다. 첨단이란 극함을 뜻하는 것으로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그 위태로움을 즐기는지 모른다.

 

쉽게 갈리는 칼날은 쉽게 무뎌지고 급히 간 칼날 또한 오래가지 못한다. 달리 보자면 노자(老子)께서 가랑이를 많이 벌리고서는 오래갈 수 없고, 꼿꼿이 서서는 오래 견디기 힘들다.”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온 지난 발자취일 수도 있다. 문화가 일찍이 발달한 서구문명 200년을 불과 수 십 년 만에 어깨를 나란히 하였으니 어찌 평탄한 물결을 바랄 수 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답을 구해야 한다. 인간이 제아무리 좋은 옷을 걸쳐도 늙음을 되돌릴 수 없고, 아무리 산해진미를 섭취해도 냄새나는 똥을 지날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 년 전 신라의 대표적 고승 원효는 뱀복이 어머니를 위한 법문에 삶이 싫어져도 죽기 어렵고 안 죽으려 해도 살기 또한 어렵네.”(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 했다.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원시사회나 농경사회나 근세나 현대의 4차 산업사회나 힘들긴 매한가지인데 힘든 원인은 딱 한 가지 위의 승구(承句)처럼 인간의 욕심이 우리 모두를 괴롭고 슬프게 한다.


욕심이란 어디서 나오는가? 이 또한 불교적으로 본다면 치심(癡心)에서 나온다. 왜 어리석다는 뜻의 치심이냐 하면 세상의 모든 존재양상은 영원하지 못하고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변화하는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은 영원하고 세상도 영원한 줄 착각하기 때문에 어리석음이요, 그 어리석음이 자신을 죽이고 이웃을 죽이고 나라를 파멸하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2000년이 훨씬 넘는 중국 둔황(敦煌) 벽화에 아미타부처님이시여 다음 생에는 전쟁이 없는 나라 처자식을 굶주리지 않는 나라에 태어나게 하소서하였을까? 그렇게 볼 때 인간의 고통은 인간 개개인의 욕심 때문에 모두가 불행해진다 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 아니 인생살이 역사를 돌이켜보면 고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싸우고 뺏고 하는 연속이었다. 나폴레옹이 그렇듯이 왕관을 썼다가 그 만큼의 치욕으로 되돌려 받지 않았던가? 전쟁도 그렇다 빼앗은 쪽은 좋을지 몰라도 뺏긴 쪽은 슬픈 일이다. 그렇게 하면서 내려온 역사가 인간의 역사요. 벗어나기 힘든 윤회(輪廻 생사의 바퀴).


유럽의 역사를 보면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혁명이라는 구호로 서로 죽이고 뺏고 하면서 이어져 왔다. 혁명이 보다 진전 된 수행이라면, 요즘 우리나라 정부와 여당이 쓰는 개혁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적절한지는 몰라도 개혁은 혁명의 모태다. 혁명이라는 단어에 그토록 몸서리쳤던 진보가 왜 혁명의 모태가 되는 일을 밀어붙일까? 하니 이 또한 권력 연장 기득권 연장이라는 부질없는 욕망의 어리석음이 아닐까 한다.


진보의 가치는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보다 완전하길 바란다.”는 뜻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의 길을 걷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고, 나아가 개혁을 넘어 혁명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마저 든다. 
  
  
  
 

 


제운스님/시인 선화가

해인사 출가, 동화 법주 범어 통도사 등 수행
문인화가, 평론가 석도륜 선생 사사
개인전 : 서울경인미술관, 양평친환경박물관 등 4회

저서 : 너는 금생에 사람노릇 하지 마라, 달마산책, 오가밥상,
그대 안에 수미산도 다 놓아버려라, 채근담, 산사의 주련,
내 마음의 이야기, 그대 마음을 가져오라, 나를 찾아 떠나는 선시여행,
산문의 향기,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시선일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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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23 [08:48]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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