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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
검찰개혁을 앞세워 자신들의 안일을 위한 안전장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정치권 아닌가.
 
김성윤 주필 기사입력  2020/10/26 [22:36]
▲김성윤 주필, ,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정치학박사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와는 달리 그의 친구는 세상을 맘껏 보고 언제든지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친구가 부러운 헬렌 켈러는 어느 날 숲속을 다녀온 친구에게 물었다. “무엇을 보았느냐”고. 그 친구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헬렌 켈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 눈 뜨고도 두 귀 열고도 별로 특별히 본 것도 들은 것도 없다니 기가 막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신은 비록 보지도, 듣지도, 그것을 말로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녀는 만약, 자신이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보고 느낄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이것을 토대로 쓴 에세이가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 이다.

 

이 에세이는 미국의 유명한 시사 잡지인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 1933년 1월 호에 발표되었다. 당시 미국은 1929년에 일어난 경제 대공황의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헬렌 켈러의 이 글로 많은 고통과 낙담 속에 빠져있던 미국인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면서 다시 일어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후 이 글은《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에세이”가 되었다. 그 3일을 되돌아보면 이렇다.

 

첫째 날에는 나의 볼 수 없는 눈을 대신하여 겸손과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겠다. 이제껏 손끝으로 만져서 감각으로 느끼고 알았던 그녀의 얼굴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감사부터 드리고 싶다. 또한 그 모습을 내 마음속에 오래오래 영원히 깊이 간직해 둘 것이다. 오후가 되면 오랫동안 숲속을 산책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보고 싶다.

 

둘째 날에는 먼동이 트며 낮이 밤으로 바뀌는 불타는 노을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그 모습을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두겠다. 밖으로 나가서 부드러운 바람의 애무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과 들꽃들을 보고 싶다. 그래도 시간이 난다면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가겠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인간이 진화해 온 궤적을 내 눈으로 확인해 볼 것이다. 저녁이 되면 찬란한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리면서 또 하루를 마무리하겠다.

 

셋째 날에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시의 화려한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한편에선 너무도 소란스럽고 다른 한편에선 너무도 활기찬 도시의 여기저기를 돌아보면서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눈여겨보겠다.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일하며 살아가는지 보고 싶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저녁이 되면,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쇼윈도에 진열된 아름다운 물건들을 아이쇼핑하면서 서서히 집으로 돌아와 꿈이었고 기적 같은 이 사흘 동안을 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다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헬렌 켈러가 그토록 보고자 소망하고 열망했던 일들을 우리는 날마다 무제한 경험하며 산다. 이도 모자라 코로나 19로 모두가 위험에 빠지고 있는데도 나만 살아남겠다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뒷다리부터 잡는다.

 

 검찰개혁을 앞세운 안전장치?

정치권에서는 검찰개혁을 앞세워 자신들의 안일을 위한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말의 성찬 속에는 잔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국민을 섬기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경제가 어렵다며 나라의 재정을 풀어서 위기를 극복한다고 야단법석이다. 그저 나라의 곳간을 탈탈 털어서 얼마씩 나누어 주면 위기가 극복되고 가난도 물리칠 것이란다. 하지만 어렵다고 돈만 나누어 주면 이 나라 국민은 거지가 될 수도 있다.

 

그리스나 남미의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를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걱정이 앞선다. 반대로 그 돈으로 일거리를 만들어 준다면 우리 국민은 독일 국민 같은 근면하고 성실한 근로자가 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 같은 정책은 많은 국민을 거지로 만들 수도 있다. 일자리를 주겠다며 공무원 수를 늘리고, 나랏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고 있다. 

 

서민을 위하여 전세를 안정시키겠다는 23번의 정책으로 집값이 오르고 전세가 실종되었다. 그래도 정책의 핵심은 검찰 개혁을 못 벗어나고 있다. 이야말로 독선이요, 아집이 아니고 무엇인가?

 

부패와 부정을 근절시키기 위한 검찰 독립이나 사법 개혁이 아닌 권력에 대드니 개혁해야 한다는 쪽으로 주객이 전도되고 말았다. 라임 사태와 옵티머스 부정 거래로 4천여 명이나 되는 국민이 노후자금을 날리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래서 헬렌 켈러의 만약 내가 3일만 볼 수 있다면 이란 에세이가 더욱더 귀하게 다가온다.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 보아라.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 보아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아라." 그렇게 순수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면 오늘 우리 정치가 얼마나 궤도를 벗어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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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26 [22:36]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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